ssebob의 세상 이야기

POST : 사진 영상

[영화 후기] 라이프 오브 파이 - 욕망의 뒷편에 서 있는 신의 모습..

어제 저녁에 온 가족이 함께 라이프오브 파이를 봤다. 그렇다. 벌써 DVD로 나왔고, 동시에 인터넷 상에 dvdrip이 떠돈다. 워낙에 평들이 좋아서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봤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스토리..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란 신의 존재와 믿음에 대한 물음, 종교(감성)와 과학(이성) 사이의 괴리, 신앙과 욕망 사이의 갈등... 그 밖에도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주제를 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반전이나 서스팬스 관점에서 해석해서 뱅갈 호랑이와의 동거가 진짜 이야기인지, 야비한 선원의 주검을 미끼로 써서 살아남은 마지막 이야기가 진짜인지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다.


영화에 대한 많은 평과 풀이가 있을 수 있지만, 순전히 나 혼자만의 시각으로 풀어 본다면, 나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로 '우주를 담고 있는 크리슈나의 입' 이야기라고 본다. 힌두 경전 중의 한토막인 이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히 소개된다. 크리슈나가 친구와 놀면서 흙을 먹는다. 이를 친구가 어머니에게 알리는데, 그의 어머니가 크리슈나를 야단치면서 입을 들여다 보는데, 그 안에 우주가 들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인데, 한가지 의문이 인다. 왜 하필 입이었을까?  눈이나 손이 아니라 왜 입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고 했을까?


입은 욕망의 원초적인 고향이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인간의 생명 에너지는 성욕이며, 어린아이의 입은 모든 욕망이 집중되는 곳이다. 그래서 유아기의 성적 욕망 단계를 가리켜 구강기라고 부른다. 

생명체의 입은 실로 탄생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곳이다. 인간의 경우만을 놓고 봐도 그렇다. 입은 각종 먹잇감들이 하나로 뒤섞이는 장소이고, 그것들이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로 바뀌는 곳이기도 하다. 조물주가 용광로에서 쇳물을 녹여서 갖가지 만물들을 만들어 낸다면, 쇳물을 녹이는 용광로는 다름 아닌 입이 아니겠는가.


영화에서 파이는 호랑이와 눈으로 교감을 나누면서 고기를 건네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을 아버지에게 들켜 크게 혼나고, 눈 앞에서 양이 산채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광경을 보게된다. 호랑이와 교감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아버지는 '그건 단지 호랑이 눈에 비친 너의 모습일 뿐'이라고 말한다. 만약에 그 순간 아버지가 말리지 않았다면 파이는 팔을 잃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파이가 나누었다는 호랑이와의 교감이란 기도나 참선, 교리 공부로 알게 된 신의 존재나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상의 욕망과 마주쳤을 때는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진리나 신의 존재, 구원, 깨달음과 같은 것은 욕망으로 뒤엉킨 물질와 늘 연결돼야 하고, 그 안에서 증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뱅갈 호랑이 리처드 파크는 다름 아닌 주인공 파이(피신)의 욕망이 체화된 형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욕망이란 채워지지 않는 식욕과 성욕,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고자 하는 생존 욕구라 할 수 있다. 


파이는 바다를 끝없이 표류하던 중간에 지도에 등장하지 않는 환상의 섬에 도달한다. 미어캣이 떼지어 살고 있는 그 섬은 흙도 없이 바다에 떠있었는데, 섬 전체가 식물로 덮혀 있었다. 한데, 그 식물은 밤이 되면 주변의 모든 동물들을 흡수해서 영양분을 빨아 먹는 식인 식물이었다. 파이는 밤에 그 식물의 열매 속에서 사람의 이빨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음날 도망치듯 섬을 빠져나온다. 

파이는 그 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섬에 계속 안주해서 살았다면, 나는 그곳을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섬에 흡수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빠져나올 때 그 섬의 전체 형상이 어렴풋이 나타나는데, 신기하게도 그 섬은 인간이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동물을 빨아들이는 섬도 결국 욕망, 그중에서도 인간의 욕망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동물들을 멸종시키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까지 파괴하고 있는 인간의 욕망을 보라. 


파이는 결국 욕망의 먹잇감이 되어가고 있는 자기 자신으로 부터 도망친 것이다. 


그런다음, 파이는 또다른 거대한 폭풍우와 맞서게 되는데, 거기서 파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폭풍우에 자신을 내맡긴다. "신이여! 나는 사랑하는 가족도 잃고 꿈도 잃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원합니까. 당신이 원하는대로 하시라. 나는 두렵지 않다"고 외친다. (이것이 환상섬에 도달하기 전인지 후인지 헷갈린다. 그치만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신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던져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그건 자신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는 않았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크리슈나의 입 이야기와 연결지어 본다. 세상 만물을 만들어 내고, 운동하게 하는 원초적인 에너지는 욕망이다. 욕망(식욕 성욕 생존욕구)은 분명 세상 만물을 분화하고 영속케 하는 에너지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느님이 자신의 아들(예수)을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으로 보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듯이, 욕망으로 태어난 만물의 형상 속에서 우리는 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요동치는 무섭고 화난 모습도 있었지만, 모든 생명체를 품고 탄생시키는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기억에 남은 또 다른 장면은 호랑이가 홀로 앉아 무수한 별들로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던 모습이다.  

욕망으로 들끓는 사나운 호랑이와 수많은 별과 은하수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밤하늘.. 그 두가지의 모습 모두에서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top

posted at

2013. 2. 12. 21:41


POST : 카테고리 없음

하승수 변호사 초청강연회

오는 1월 30일(수) 저녁 7시 30분 진주미디어센터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위원장) 초청 강연회를 합니다.

함께 지역운동의 미래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top

posted at

2013. 1. 25. 06:04


POST : 카테고리 없음

레미제라블... 후기

오늘 아침 아내와 함께 조조할인으로 레미제라블을 봤다. 
나는 보기와는 달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잘 짜는 편이라.. 단단히 마음 먹고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휴지도 호주머니에 넣고..


잘 만든 영화..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와 영상미..어색한 구석을 찾아낼 수 없는 노래와 구성.. 특히 초반에 장발잔이 죄수의 신분으로 폭풍우 속에서 배를 끄는 장면이 장엄하고 인상적이었다. 바리케이트 위에서 기꺼이 죽음을 불사하며 마리우스의 친구가 외친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오늘 우리가 쓰러지면 내일은 다른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일어서리라"

중간 중간 슬픈 장면들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지만, 격한 감동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사실 신파에 약하다. 영화는 자칫 신파로 흐르지 않도록 감정을 잘 억제했다.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의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새삼 느껴지는 영화임이 분명했다. 깔끔했다.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한데.. 그래서 한편으론 불편했다.

혁명과 사랑..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 정의와 자비.. 
특히 체제에 저항하는 혁명의 속살과 정신까지도 자본은 완벽하게 파악하고 해부해서,, 그 정수를 끄집어 내어 상품으로 만든다.. 우리는 그저 돈 만원을 내고 혁명을 추억하며 스크린 앞에서 묵념할 수 있을 뿐인가? 
보아라.. 너희 미천한 인간들이 하는 모든 것...그 흔한 사랑과 체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위험한 사상과 혁명, 미래에 대한 꿈 마저 낱낱이 분석되고, 파악되어 있다..
영화는 담담히 이렇게 말해주는 듯 했다.

물론 그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부르주아 혁명이다. 봉건제와 왕정을 무너뜨리고, 가난을 물리치고 무한한 부와 번영을 추구하는 현실의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혁명.. 그 혁명을 위해 뿌려진 피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혁명을 포장한 상품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재생되고 되새김질 되는 것은 여전히 빼앗기고, 학살당하는 민중이 있고, 무너뜨려야 하는 권력과 체제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분석되고 파악되고, 속살이 아니라 뼈속과 실핏줄 하나 까지 해부되더라도..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정신마저 제거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다름아닌 자본주의 자체이기 때문이다.

top

posted at

2013. 1. 6. 20:21


CONTENTS

ssebob의 세상 이야기
BLOG main image

RSS 2.0Tattertools
공지
아카이브
최근 글 최근 댓글
카테고리 태그 구름사이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