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ebob의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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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 = 외계인의 눈으로 본.. 외계 지구..

처음엔 지구인의 눈으로 더럽고 낯선 외계 이방인들을 보게 되지만, 
점점 그들의 눈으로 추악하고 낯선 지구인의 행동 양식을 보게 된다.

<완전히 외계인이 된 비커스가 부인을 위해 쓰레기 더미로 꽃을 접는 마지막 모습>



페북에서 추천을 받고 방금 <디스트릭트 9>를 봤다.
 
벌써 오래전에 공유 사이트에서 다운받아 보려고 했지만, 호불호가 워낙 엇갈리고 뻔한 외계인 영화일 것 같아서 미뤄뒀던 영화다.

영화를 보고난 소감은,,, 외계 생명체와 비행선, 실감 나는 특수효과를 사용한 영화도 충분히 감성적이고, 감동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

영화를 보는 내내, 진짜로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온다면 정부와 언론, 과학자들의 반응이 꼭 저럴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도입 부분과 끝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서 그런 느낌이 더해졌음은 물론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처음엔 지구인의 눈으로 더럽고 낯선 외계 이방인들을 보게 되지만, 점점 그들의 눈으로 추악하고 낯선 지구인의 행동 양식을 보게 된다.
영화의 목적은 외계생명체의 존재나 신비감을 드러내기 보다는, 지구인의 탐욕과 타자를 대하는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데 있다. 

먼저, 외계에서 온 비행선이 출현한 곳이 그 흔한 할리웃 SF에서 처럼 워싱턴이나 뉴욕 상공이 아니라, 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라는 사실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암묵적으로 표현한다. 

외계인들에 대한 강제 이주정책은 문명 국가들의 난민(혹은 빈민) 이주 정책과 꼭 닮았고, 비이간적인 생체실험과 무기 실험, 거짓 선전과 거짓 정책들도 우리 국가와 정부가 하는 짓과 똑 같다. 특히 외계인들을 '노동자'로 사용하려 했다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게 된다. 

겉모습은 파충류와 곤충을 섞어 놓은 듯 징그럽게 생겼지만, 쉽게 인간의 말을 믿고 자식과 동료에 대한 애정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외계인과 오로지 무기(=힘=권력)와 돈 밖에 모르면서, 딸의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인간의 모습이 묘하게 대비된다.

과연 인간성이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라는 고민과 함께.. 문명과 야만에 대한 정의가 거꾸로 뒤집혀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고귀한' 인간의 눈에 비친 '징그러운' 외계 생명체의 모습은, 어쩌면 유색인을 바라보는 백인들의 시각일 수도 있고, '문명화'되지 않은 아마존 원주민을 바라보는 문명 세계 인간들의 눈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거꾸로, 오염되지 않은 아마존의 눈에 비친 문명은 얼마나 삭막할 것이며, 외계인의 눈에 비친 피부가 노출된 지구인은 얼마나 징그러울 것인가.

반인반외계인이 된 비커스가 땅바닥에 쓰러져서 오른쪽 왼쪽 각기 다른 눈으로 외계인 부자가 무사하길 애타게 바라보던 눈빛은 인간성에 대한 감독의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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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4.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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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기] 라이프 오브 파이 - 욕망의 뒷편에 서 있는 신의 모습..

어제 저녁에 온 가족이 함께 라이프오브 파이를 봤다. 그렇다. 벌써 DVD로 나왔고, 동시에 인터넷 상에 dvdrip이 떠돈다. 워낙에 평들이 좋아서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봤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스토리..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란 신의 존재와 믿음에 대한 물음, 종교(감성)와 과학(이성) 사이의 괴리, 신앙과 욕망 사이의 갈등... 그 밖에도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주제를 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반전이나 서스팬스 관점에서 해석해서 뱅갈 호랑이와의 동거가 진짜 이야기인지, 야비한 선원의 주검을 미끼로 써서 살아남은 마지막 이야기가 진짜인지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다.


영화에 대한 많은 평과 풀이가 있을 수 있지만, 순전히 나 혼자만의 시각으로 풀어 본다면, 나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로 '우주를 담고 있는 크리슈나의 입' 이야기라고 본다. 힌두 경전 중의 한토막인 이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히 소개된다. 크리슈나가 친구와 놀면서 흙을 먹는다. 이를 친구가 어머니에게 알리는데, 그의 어머니가 크리슈나를 야단치면서 입을 들여다 보는데, 그 안에 우주가 들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인데, 한가지 의문이 인다. 왜 하필 입이었을까?  눈이나 손이 아니라 왜 입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고 했을까?


입은 욕망의 원초적인 고향이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인간의 생명 에너지는 성욕이며, 어린아이의 입은 모든 욕망이 집중되는 곳이다. 그래서 유아기의 성적 욕망 단계를 가리켜 구강기라고 부른다. 

생명체의 입은 실로 탄생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곳이다. 인간의 경우만을 놓고 봐도 그렇다. 입은 각종 먹잇감들이 하나로 뒤섞이는 장소이고, 그것들이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로 바뀌는 곳이기도 하다. 조물주가 용광로에서 쇳물을 녹여서 갖가지 만물들을 만들어 낸다면, 쇳물을 녹이는 용광로는 다름 아닌 입이 아니겠는가.


영화에서 파이는 호랑이와 눈으로 교감을 나누면서 고기를 건네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을 아버지에게 들켜 크게 혼나고, 눈 앞에서 양이 산채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광경을 보게된다. 호랑이와 교감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아버지는 '그건 단지 호랑이 눈에 비친 너의 모습일 뿐'이라고 말한다. 만약에 그 순간 아버지가 말리지 않았다면 파이는 팔을 잃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파이가 나누었다는 호랑이와의 교감이란 기도나 참선, 교리 공부로 알게 된 신의 존재나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상의 욕망과 마주쳤을 때는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진리나 신의 존재, 구원, 깨달음과 같은 것은 욕망으로 뒤엉킨 물질와 늘 연결돼야 하고, 그 안에서 증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뱅갈 호랑이 리처드 파크는 다름 아닌 주인공 파이(피신)의 욕망이 체화된 형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욕망이란 채워지지 않는 식욕과 성욕,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고자 하는 생존 욕구라 할 수 있다. 


파이는 바다를 끝없이 표류하던 중간에 지도에 등장하지 않는 환상의 섬에 도달한다. 미어캣이 떼지어 살고 있는 그 섬은 흙도 없이 바다에 떠있었는데, 섬 전체가 식물로 덮혀 있었다. 한데, 그 식물은 밤이 되면 주변의 모든 동물들을 흡수해서 영양분을 빨아 먹는 식인 식물이었다. 파이는 밤에 그 식물의 열매 속에서 사람의 이빨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음날 도망치듯 섬을 빠져나온다. 

파이는 그 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섬에 계속 안주해서 살았다면, 나는 그곳을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섬에 흡수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빠져나올 때 그 섬의 전체 형상이 어렴풋이 나타나는데, 신기하게도 그 섬은 인간이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동물을 빨아들이는 섬도 결국 욕망, 그중에서도 인간의 욕망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동물들을 멸종시키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까지 파괴하고 있는 인간의 욕망을 보라. 


파이는 결국 욕망의 먹잇감이 되어가고 있는 자기 자신으로 부터 도망친 것이다. 


그런다음, 파이는 또다른 거대한 폭풍우와 맞서게 되는데, 거기서 파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폭풍우에 자신을 내맡긴다. "신이여! 나는 사랑하는 가족도 잃고 꿈도 잃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원합니까. 당신이 원하는대로 하시라. 나는 두렵지 않다"고 외친다. (이것이 환상섬에 도달하기 전인지 후인지 헷갈린다. 그치만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신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던져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그건 자신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는 않았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크리슈나의 입 이야기와 연결지어 본다. 세상 만물을 만들어 내고, 운동하게 하는 원초적인 에너지는 욕망이다. 욕망(식욕 성욕 생존욕구)은 분명 세상 만물을 분화하고 영속케 하는 에너지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느님이 자신의 아들(예수)을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으로 보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듯이, 욕망으로 태어난 만물의 형상 속에서 우리는 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요동치는 무섭고 화난 모습도 있었지만, 모든 생명체를 품고 탄생시키는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기억에 남은 또 다른 장면은 호랑이가 홀로 앉아 무수한 별들로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던 모습이다.  

욕망으로 들끓는 사나운 호랑이와 수많은 별과 은하수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밤하늘.. 그 두가지의 모습 모두에서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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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12.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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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한 진지한 물음 <아쉬람>


 <아쉬람>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영화다.
여성인권의 시각으로 본다면 더할 수 없는 성평등 영화이고, 종교를 중심에 둔다면 그 어떤 종교 영화보다 믿음에 대한 참 의미를 진지하게 묻는 영화이다. 또한 사회 부조리와 지식인의 자기 모순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영화는 이토록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짜임새가 치밀하고, 개연성이 높아서 작품의 완성도 또한 찬사를 받을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비록 인도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지만, <아쉬람>은 내가 그 전까지 보아온 인도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순간에 깨어버린 영화이기도 하다. 그 고정관념이란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춤과 노래로 관람자의 눈과 귀를 무리하게 충족시키려는 특유의 공연적(?) 요소, 또는 헐리우드와 경쟁한다고는 하지만 실상 줄거리나 포맷은 헐리우드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부분적으로 이식한 듯한 영화(발리우드)를 말한다.

<아쉬람>은 이런 류의 인도 영화와는 달리 시종일관 진지하고 또 진지하다. 그러면서도 줄거리의 재미와 긴장을 마지막 장면까지 잃지않는다.
하도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감독 '디파메타'는 역시 예상대로 여성이었다. 더구나 뉴델리대학에서 철학으로 석사와 학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신앙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며 주고 받는 수많은 질문들은 분명 감독 자신이 종교와 철학을 공부하며 갖게된 의문일 것이다.

영화는 쭈이아라는 여덟살난 주인공이 결혼하자마자 과부가 되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수도원 <아쉬람>에 들어가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또다른 주인공 깔라니와 나라얀의 사랑 이야기가 전면으로 전개가 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멸시와 천대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다큐적인 시각으로 현실감 있게 그린다. 영화를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도 인도 여성들의 인권,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서 억압과 차별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지금까지) 과부들의 인권문제가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한편으로 인도 카스트의 가장 상위층인 브라만 계급의 치부를 고발한다. 앞에서는 가장 부정하고 천하게 여기는 과부들을 은밀히 뒷문으로 불러들여 매매춘을 하고는 오히려 그것이 여성들에게 영광스런 일이라고 말하는 브라만. 그들을 보면 성추행이나 성매매를 하고도 그것이 성공한 남자들의 자연스런 권리인냥 말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나 검사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또한 그들의 자녀들은 영국 유학을 하면서 배운 바이런의 저항시를 읊고, 위스키를 마시고 자유를 그리워 하면서도 그들이 가진 기득권은 절대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영화 중반부에 깔라니의 언니 사쿤딸리는 과부 재가를 허용하는 법이 통과됐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왜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르는거냐"고 묻는 그녀에게 종교지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지배자들)은 자기에게 이득이 안되는 법은 무시하기 때문이다"라고. 놀랍도록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 영화를 다 설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성인권 문제와 함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반복해서 물음을 던진다. 때로는 깔라니와 나라얀의 대화를 통해서 또는 깔라니의 친언니 사쿤딸라와 종교지도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간디의 음성과 가르침을 통해서.
"신상(神像)은 기도를 들어줄거라 생각하면서, 왜 구름은 못들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거죠" -나라얀이 깔라니에게.
"깨달음(해탈)이 육체의 욕망을 벗어난 곳에 있는 것이라면 나는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쿤딸라와 종교지도자
"신앙과 양심이 서로 부딪힐땐 무엇을 선택해야 합니까?"
"경전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브라만은 절대 예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나라얀이 그의 아버지에게  

그리고 믿음의 자세에 대해 정수리를 찌르는 한마디는 뭐니뭐니 해도 마지막 장면에서 간디가 한 이 한마디 일 것이다.
"저는 오랫동안 신은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전 진리가 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겐 진리를 찾는게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진리를 향한 부단한 노력과 성찰이 없는 맹목적인 믿음이나 교리는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로 작용할 뿐, 진정한 구도자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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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21.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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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저수지 철새


지지난주에 다녀온 주남저수지 사진을 이제야 정리해서 올립니다.
역시 새 사진 찍기가 장난 아니란걸 절실히 느낀 하루였습니다.  300미리 3.5-5.4 가지고는 생생한 새사진 찍기란 택도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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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2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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