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자본 악한 자본 선한 자본과 악한 자본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는 삼성과 어찌됐건 노조를 대화상대로 받아들이되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길들이기에 성공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라는 두 자본에 대해 전자는 악하고 후자는 선하다는 평가를 내리는게 정당한가.
또는 제3세계에 공장을 이전해 가난한 나라의 노동력을 싼값에 착취하는 기업은 나쁘고, 개성공단에 진출해 싼 가격으로 노동력을 구매하지만 민족의 통일에 약간의 도움이 되는 기업은 착한 걸까?
조중동이라는 언론재벌은 악해서 거짓보도를 하고 엠비씨라는 언론자본은 착해서 공정 보도를 하려고 하는걸까?
그렇지 않다. 악한자본 착한 자본이란 말은 그 자체로 성립이 안되는 허구다. 자본은 가치판단을 하지않는다. 하물며 감성이나 이성을 가질리도 없다. 무한한 자기 재생산과 공룡화를 추구할 뿐이다. 그것이 지속가능한지 계산을 하거나 지속 가능성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파괴적인 몸집불리기에만 집중하느냐의 차이 정도는 있겠지.
지금 이 땅의 정치도 자본에 예속된 만큼 자본이란 단어를 권력이란 말로 치환해도 똑 같은 말이 돤다. 착한권력이나 악한 권력이란 말이 성립될 수 있는 말인가? 없다.
다만 통제되는 권력과 통제를 하지 못하는 권력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오늘날 이명박 정부하의 대한민국 국민들의 불행은 앞선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권력은 쉼없이 국민들에 의해 시민들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돼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에 그 씨앗이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 때는 국민, 시민들이 망각했다기 보다 감시하고 통제할 여유를 자본과 극우주의자들에게 빼앗겼었지. 그것은 감시와 통제로 부를 수 없는 간섭과 방해였지만. 어쨌든 그 둘 사이의 싸움에 시민권력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려는 대안권력은 감시와 통제가 필요 없는 착한 권력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라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순화된 권력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물론 국민을 노예로 알고 시민을 허수아비로 생각하는, 왜곡된 국민의 욕망이 만들어낸 지금의 야만적인 권력부터 통제해야 한다는 산을 먼저 넘어야겠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또는 제3세계에 공장을 이전해 가난한 나라의 노동력을 싼값에 착취하는 기업은 나쁘고, 개성공단에 진출해 싼 가격으로 노동력을 구매하지만 민족의 통일에 약간의 도움이 되는 기업은 착한 걸까?
조중동이라는 언론재벌은 악해서 거짓보도를 하고 엠비씨라는 언론자본은 착해서 공정 보도를 하려고 하는걸까?
그렇지 않다. 악한자본 착한 자본이란 말은 그 자체로 성립이 안되는 허구다. 자본은 가치판단을 하지않는다. 하물며 감성이나 이성을 가질리도 없다. 무한한 자기 재생산과 공룡화를 추구할 뿐이다. 그것이 지속가능한지 계산을 하거나 지속 가능성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파괴적인 몸집불리기에만 집중하느냐의 차이 정도는 있겠지.
지금 이 땅의 정치도 자본에 예속된 만큼 자본이란 단어를 권력이란 말로 치환해도 똑 같은 말이 돤다. 착한권력이나 악한 권력이란 말이 성립될 수 있는 말인가? 없다.
다만 통제되는 권력과 통제를 하지 못하는 권력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오늘날 이명박 정부하의 대한민국 국민들의 불행은 앞선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권력은 쉼없이 국민들에 의해 시민들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돼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에 그 씨앗이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 때는 국민, 시민들이 망각했다기 보다 감시하고 통제할 여유를 자본과 극우주의자들에게 빼앗겼었지. 그것은 감시와 통제로 부를 수 없는 간섭과 방해였지만. 어쨌든 그 둘 사이의 싸움에 시민권력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려는 대안권력은 감시와 통제가 필요 없는 착한 권력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라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순화된 권력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물론 국민을 노예로 알고 시민을 허수아비로 생각하는, 왜곡된 국민의 욕망이 만들어낸 지금의 야만적인 권력부터 통제해야 한다는 산을 먼저 넘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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